하얀 달의 파편들
카테고리
작성일
2019. 8. 17. 02:28
작성자
나티에르

​-너 사람까지 죽였다면서 왜 그랬어?



“....”

“이런 질문은 처음이네요. 왜 그랬냐고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해요.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이상하다. 처음에는 이런 이유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좀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목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왜..떠오르지 않는 걸까?

무언가 깊은 곳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죽이고, 죽여오면서 지키고 있던 무언가가. 무너진 것이 무엇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자 불안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차오르자 물에 잠긴 것처럼 호흡하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무엇일까. 살고자 하지도 않으면서 살려고 사람을 죽인다는 대답은 모순, 그 자체였다. 처음에 사람 죽이는 일을 시작한 이유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증오하면서 거짓된 이유를 말하며 시간이 지났다. 이제 나는 감정이 닳아가고, 그저 사람을 죽이는 기계일 뿐인 걸까..? 이런 생각이 들자 눈가가 뜨거워진 느낌이 든 거 같다.

“....돈이 필요했어요.”

이 이유 또한 아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집을 나오고 나서 절 데려간 분이 그런 직업이어서...”

또 거짓말. 그 사람은 나에게 선택지를 줬다. 후원을 받으면서 사회 세계로 나가는 것, 혹은 자신의 제자로 들어오는 것.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왜 이런 일을 선택하고, 무리해가면서 돈을 벌고, 감정을 지웠는지. 평소라면 잊어버렸다면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넘어가버렸겠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심호흡을 하며 얕은 숨을 불안하게 내쉬던 것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과거를 다시 떠올렸다. 18살에 혼자 마피아 패밀리 하나를 전멸시킨 일. 16살에 함정에 걸려서 죽을뻔한 일. 13살에 대형 거물을 죽이고 유명해지기 시작한 일, 12살에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일. 9살에 그 남자에게 거둬진 일과 아버지를 죽인 일, 그리고 여동생과 헤어진 일.


답은 나왔을까?









“ ...살려면 사람을 죽여야 했고,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려면 그 남자에게 거둬지는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사람을 죽이기 시작한 이유는...그저 동생을 찾고,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두 눈을 손등으로 가리며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가장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는 것은 알아요. 아마 동생이랑 다시 만나고, 제가 번 돈은 전부 피로 물들여져 있다는 것을 알면 분명 저를 경멸하겠죠. ..그런데....어리고 어린, 9살의 저는 이게 최선이었어요. 돈을 많이 벌면서, 어디로 떠났는지 모르는 동생을 찾을 수 있는 선택할 수 있는 하나뿐인 이유였다고요...!”

점점 시아가 흐려지는 거 같더니 뜨거운 것이 제 볼을 타고 흘러져 내렸다.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멈출 수도 없었다. 아마 누군가가 지금 자신의 모습과 말을 들으면 변명일 뿐이라고 말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그만두고 싶어요.....”


이런 곳은 발을 들이는 건 쉽지만,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다. 유명하다면 더더욱.





'설치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화치카] 애정은 병열  (0) 2021.03.20
있잖아요, 치카가씨.  (0) 2019.10.17
집사와 도련님  (0) 2019.08.16
당신의 품  (0) 2019.08.15
분노  (0) 2019.08.15